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 곧 그의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인간의 교만이다 (잠언 6:16-17). 그래서 마귀가 인간을 꾀는 수단이 교만이다. 우리 자신이 죄 짓고 있는지도 모르는 죄가 교만 죄이다. 사탄은 슬그머니 우리에게 교만을 넣어주어 하나님과 멀어지도록 한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면 인간과의 관계가 깨어지고 상대방을 비난한다. 가정 안에 분노도 교만과 관련이 있다. 상대편을 비난하고 나는 더 낫다고 생각할 때 평안이 깨진다.
교만은 남과 비교해서 생기기 때문에 경쟁적이다. "교만은 모든 악 중에서 가장 무서운 악이며 영적 암으로 서로 다투게 하여 다른 것을 갉아먹는다." 라고 C.S. Lewis는 주장한다. 그는 "교만이 우리를 서로 다투게하고 교만에 비하면 다른 죄들은 벼룩에 물린 자국과 같다." 라고 말한다.
교만은 남과 비교해서 자기가 남보다 낫다는 우월감으로, 또 다른 한 면은 열등감으로 마음에 자리잡는다. 우쭐대는 것만이 교만이 아니다. 걱정하면서 주님께 온전히 못 맡기고 자기 힘으로 해결하려는 것도 교만이다. 열등감은 우월감처럼 자기 중심으로 생각한다. 자기 생각으로 마음이 꽉 차 있으면 하나님이 들어가실 자리가 없다. 바리새인 처럼 자기 생각과 자기 의로 가득 찬 마음에도 주님이 들어가실 틈이 없다.
C. S. Lewis 저서,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The Screwtape Letters) 1-31편지 중 14번째 편지에서 스크루테이프 악마는 조카 악마에게 크리스천을 하나님과 단절시키기 위해서 기독교인의 겸손을 변질시키라고 시킨다. 자기가 겸손하다고 생각하게 하는 마음을 기독교인 마음에 슬쩍 집어 넣으라고 한다. 사람의 시선을 인식하면서 열등감이나 소심함을 나타 내라고 한다.
자기가 겸손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교만이다. "나는 겸손해야 해." 하는 것과 "나는 겸손해." 하는 말은 다르다. 그리고 근본적인 악이 교만이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신앙 생활을 더 열심히 하고 있고 믿음이 더 낫다고 우월감을 느낄 때 위험하다. 남의 시선을 의식한 거룩한 행위나 겸손은 영적 교만이다.
골로새서 2:18-19에서 꾸며낸 거짓 겸손(false humility)에 대하여 주의경보를 하고 있다. 거짓 겸손은 그 본 것에 의지하여 육신을 따라 남의 눈을 의식해 겸손한 척 하는 것은 머리(그리스도 예수)를 붙들지 아니한 교만에서 나온 행위라고 지적하고 있다.
모든 죄 중심에는 내가 있다. 자기를 드러내고 높임을 받으려는 마음과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마음에서 나온다. 루시퍼와 그를 따른 천사들의 타락은 자기 교만(self-pride)에서 나온것이다. 자기 만족을 추구해서 하나님과 견주어 같아 질려는 교만에서 나왔다.(이사야 14:14). 그러나 결과는 광명의 천사 위치에서 바깥 어두운 곳으로 쫓겨나 마귀로 전락한 위치로 추락했다.
뱀이 하와를 유혹 할 때도 하나님 말씀을 의심하게 만들고 하나님께서 금하신 그 과실을 먹어도 절대로 죽지 않고 하나님처럼 지혜롭게 된다고 꼬였다. 교만이 마음에 들어갈 때 하나님 말씀에 의심을 품게하고 하나님께 불순종 하는 죄를 범하게 된다. 교만한 마음이 들어 자기 위치를 떠나 자기를 높이려 할 때 하나님과 떨어지는 길을 택하게 되는 것이다.
C.S. Lewis의 멘토이자 스승인 조지 맥도널드의 "지옥의 유일한 원리는 나는 내 것이다 라는 생각이다." 란 말은 인간이 하나님을 떠난 자기 중심적 생각이 불러오는 피할 수 없는 결과를 말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교만이 오면 수치가 오고 겸손이 오면 지혜가 온다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지금도 인간은 어리석어서 자기 교만에 자기가 속고 있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오바댜 1:3 에서 "너희 마음의 교만이 너를 속였도다." 라고 말씀하신다. 우리의 교만은 결국 우리 영혼의 눈을 어둡게 하고 바른 판단을 가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인간의 교만은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새로운 변화를 추구한다. 변화가 모두 나쁜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변화가 목적이 되면 자신이 변화 욕망의 노예가 되는 것도 잊는다. 인간의 본능에서 나오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은 새로운것을 추구하면 추구 할수록 새로움에 대한 욕망이 커지고 하나님을 떠나 죄로 이끌어간다. 인간 관계가 깨지고 가정까지 파괴 된다.
인간의 교만은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까지도 조금씩 인간 중심으로 고쳐서 변질 시켜나가고 있다. 변함없는 것은 질색하게 하고 새것을 찾게하라고 꾀인다. "같은 것은 싫증나. 새것을 찾아!" 라고 마귀는 오늘도 인간의 욕망을 건드려서 우리에게 복잡한 질문을 하게 하며 꾄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25번째 편지에서) . 결국 삶에서 진리를 잃고 본질을 잊어버려 변질되어 하나님과 멀어지게 된다.
자기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정상이다. 그러나 남도 소중하다는 사실을 마땅히 인정하지 않을 때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을 경우 인간은 상대방에게 자기 안의 싫은 것을 남에게 투사하는 경향이 있다. 자기 자신의 수치를 보지 않기위해 본능적으로 남의 결점을 보고 상대방의 탓으로 돌리기 쉽다. 모두 교만한 죄성을 가지고 있기에. 자신의 잘못을 남의 탓으로 돌릴 때 관계가 깨질 뿐만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이슈는 해결하지 못한다. 성경은 자기 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고 가르치고 있다 (빌립보서 2:3-4).
서로 틀어진 사이, 그 사건을 나는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먼저 내게 잘못이 있지 않은지 자신을 살펴 보는 것이 마땅하다. 상대를 사랑하면 진심으로 상대편을 이해할려는 의도과 사랑의 수고가 필요하다. 그리고 성경 말씀의 렌즈를 통해서 나 자신을 살펴보고 상대방과의 관계를 생각하는것이 옳은 길이다.
딤후 3:2에서 교만하고 남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만을 위하는 이기적인 사랑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이 없어 결국 자기를 사랑하게 되지 않고 스스로를 해하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왜냐하면 디모데후서 3장 5절 말씀에서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고 경고를 울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의 대신 자기 의를 내 세우는 것은 교만이다. "교만은 모든 죄악의 어머니이다." 라고 토마스 아퀴나스는 말했다. 사막의 수도사들의 영적 훈련에서 교만이 첫째로 나온다. 내면의 교만, 하나님이 아신다. 기침과 사랑은 감출 수 없는것처럼 내면의 교만도 결국 다른 사람에게 들어나게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는 죄인들(나)을 구하시려 하늘 보좌를 떠나서 이 땅에 오셔서 아버지 하나님께 순종하심으로 끝 까지 낮아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서 죄로 인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막힌 담을 자기의 육체로 허물어 버리셨다 (엡2:14).
이 주님을 내 안에 모시는 것이 답이다. "하나님의 아들(예수)이 세상에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The reason the Son of God appeared was to destroy the devil's work.)" 요한 일서 3:8. 내 힘으로 마귀를 물리치지 못한다. 예수 믿음 안에서 하나님 말씀으로 마귀와의 영적 투쟁에서 이길 수 있다.
내 안에 감추인 교만한 마음을 내 버리면 겸손이 찾아온다. 그러나 고질적인 이 내 교만을 치유하려면 내 힘으론 안된다. 가장 먼저 내 연약함을, 교만 했었던 나, 교만해 질 수 있는 나, 현제 숨겨있는 나의 교만한 상태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자기 주권, 교만한 자아를 못박고 내가 죽는 길이다.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누구인지 알고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하셨는지 알면 내가 감히 교만한 마음을 품을 수 없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일상에서 내가 죽고 예수 그리스도로 능력으로 사는 길을 매일 우리(나)는 선택해야 한다. 하나님 약속의 말씀을 늘 묵상하며 성령에 의지하며 기도에 힘쓰자. 마귀가 놓는 유혹의 그물에 걸리지 않도록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을 때 죄를 이기고 승리하며 살아 갈 것이다.
사도 바울은 "나는 죄인의 괴수라."(디모데전서 1:15) 라고 고백하고 있다. 그리고 고린도에 있는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로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린도전서 15:31)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에베소서 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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