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때로 쉬고 싶어도 쉬지 못하고 달려야 하는 현실에 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신이 탈진하고 지쳐 있는 것을 알면서도 쉬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런데 그와 달리 살다 보면 자신이 원하지 않았지만 강제로 쉼을 얻는 경우도 있습니다. 때로 병을 얻어 쉼을 얻기도 하고, 자의든 타의든 사업과 직장에서 벗어나 쉼을 얻기도 합니다. 

물론 저도 예외는 아닙니다. 이번 추수 감사절은 적은 가족이나마 온 식구가 한 자리에 모일 수 있었습니다. 대학에 다니는 큰아들과 남가주에 있는 조카까지 모이니 조용했던 집안에 활기가 넘칩니다. 제가 직장을 다니면서 목회를 하기에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주중에는 직장에서 일하고 저녁이 되면 말씀을 묵상하며 설교를 준비합니다. 토요일과 주일은 더 더욱 바쁜 여정입니다. 그러니 가족과 함께 저녁식사를 할 때를 제외하고는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모처럼 쉼을 얻어 온 식구와 함께 지낼 여유가 생겼습니다. 전에는 다같이 모여도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아 특별히 무엇을 할까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시간적 여유가 생겨서 ‘무엇을 하면 좋을까?’하는 생각지도 못한 고민이 생겨납니다. 아내가 굴 양식장(Oyster Farm)에 가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합니다.

처음 가 보는 길이라 길을 잘못 들어서 곡예를 하는 듯한 낭떠러지가 보이는 아름다운 해변을 따라 국도 1번 길을 지나갑니다. 차에서 내릴 때 물씬 풍겨오는 바다 내음이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하는 즐거운 하루입니다. 큰 아이는 신바람이 나서 열심히 굴을 까서 식구들에게 나누어 줍니다. 또 둘째는 역시 막내답게 굴을 까 달라기도 하고, 먹으면서도 더 익혀 달라는 개성 있는 주문도 잊지 않습니다. 이런 모습이 대견하면서도 가슴 밑에서부터 애잔한 마음이 밀려옵니다. 큰 아이가 그토록 굴을 좋아했었는지, 밖에서 나들이하는 것을 이토록 좋아했는지 대학생이 되도록 모르고 있던 아빠로서 미안한 마음 때문에 아련히 가슴이 아파 옵니다. 올해는 참으로 오랜만에 하루 온종일 식구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가족과 함께 있는 그 자체만으로 행복한 마음인데 더욱이 햇빛은 따스하고 웃음이 함께하는 하루입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한없이 감사했던 귀중한 시간입니다. 마땅히 간직해야 할 가족의 소중함을 새삼 느낄 수 있다는 아내의 말을 제 가슴에 소복이 담아둡니다. 이제는 집에 있으면서 아내를 도와 빨래를 하려고 해도 해 본적이 없어 아내에게 물어보지만 가르쳐 주지도 않습니다. 가족을 위하여 저녁을 준비하려고 하지만 망치기만 해서 먹지도 못했습니다. 한 번은 생선으로 저녁을 준비한다는 것이 제 손가락의 살점을 자르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히 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설거지입니다. 그나마 가족을 위해, 아내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찾았습니다. 요즘 가족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평온한 마음으로 설교를 준비하고 모든 사역에 대하여 총정리를 할 수 있는 시간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하나님 안에서 나의 영성의 숨 고르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을 주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다하지 못한 사역들, 그리고 새로운 때를 위하여 복음을 전할 준비를 합니다.

이런 면에서 하나님이 우리가 열심히 살 때도 고난을 주고 우리를 멈추시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배려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가끔 열심을 다해 달려가려 하지만 무엇 때문인지 길이 막힐 때가 있습니다. 잘 안 풀릴 때가 있습니다. 직장과 사업이 잘 안 되고, 안 풀리기도 합니다. 때로는 생각지도 못한 질병이 찾아옵니다. 그때 우리는 성급하게 하나님을 원망할 때가 있지만 그렇게 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어쩌면 내가 너무 분주히 달려가니까 그러다가 지쳐서 파멸될까봐, 하나님께서 나를 염려하셔서 잠깐 멈추어 서게 하신 후, 병을 주기도 하시고, 고난을 주기도 하시고, 나에게 새로운 삶을 재충전하고 정돈할 수 있는 시간을 주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광야에서도 꽃은 핍니다"에서  이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