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집에는 먼지가 많아요

켈리포니아에서 살다가 동부 노우쓰 캐롤라이나로 이사하게 되었습니다. 잘 알지 못하는 새로운 곳에서 집구하기란 싶지 않습니다. 몇개월 아파트에 살다가 새로 지은 새집으로 이사하였습니다. 그런데 새집의 집안을 치우면서 치워도 치워도 먼지가 많이 있다고 합니다. 매일 같이 닦고 쓸어도 먼지가 보인다고 합니다. 전에 어둡고 낡은 아파트에 살 때에는 더러운 것도 모르고 살았는데, 오히려 새집에 오니 먼지가 자주 눈에 뜨인다고 합니다.

살던 아파트는 카페트 색깔이 진한 밤색이고 창문이 적어 항상 어두운 분위기여서 낮에도 불을 켜고 지내야만 했습니다. 짙은 색깔의 낡은 카페트이니 먼지가 보이지도 않아 청소하고 쓸어도 표시도 나지 않습니다. 대충 치우고 살아도 더러운지도 모르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밝고 깨끗한 새집은 밝은 색의 카페트에 사방이 창문이고 유리문입니다. 낮에는 밝은 빛이 들어와 정말 조그마한 먼지까지도 보입니다. 아니 햇살 사이로 먼지가 움직이는 것이 보입니다. 그러니 쓸고 닦아도 금방 먼지가 앉아 잇는 것을 보고 또 다시 쓸고 닦아야 합니다.

죄의 문제도 이런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매일 같이 회개 할 것이 있고, 회개하고 또 회개하여도 생겨나는 죄같이 보입니다. 오히려 예수를 믿지 않을 때보다 더 많은 죄를 가지고 사는 느낌이 듭니다. 예수를 믿지 않을 때는 내가 죄인이라는 느낌을 가지고 살지 않았는데 예수를 믿고 나서는 아직도 내 마음 한 구석에는 죄된 본성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때로는 그 죄된 본성이 생각 날 때마다 마음이 불편하기 짝이 없습니다. 어두운 아파트에 살면서 뽀얗게 쌓인 먼지가 있어도 알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우리가 정녕 죄 가운데 있을 때에는 죄가 죄인지 모르고 살아가듯이, 내가 죄인인지 조차 느끼지 못하고 마음으로부터 더럽고 추한 생각을 하게 되어도 죄의식을 느끼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내가 빛 가운데 있을 때에는 나의 먼지가 보입니다. 내가 깨끗하고 바르게 살려고 할 때 더욱 더 양심의 가책을 느낍니다. 만일 우리 자신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더럽고 어두운 생각을 느낀다며는 나는 분명 빛 가운데 걸어가고 있습니다.

내가 빛 가운데 걸어가기에 나는 나의 추한 생각들을 바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내가 죄가 없다고 느끼거나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간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다시금 뒤돌아보아야 합니다. 나의 마음이 강퍅하여 나의 마음이 완악하여 자신의 양심마저 저버리지 않는지요. 혹시 나는 죄 가운데 있으면서도 나의 죄를 바라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매일 같이 회개 할 수 있는 죄가 있다면 나는 빛 가운데 걸어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더욱더 조그만 한 것까지 들여다보고 회개함으로 깨끗하고 정직한 삶을 통하여 새롭게 주님을 향하여 더 가까이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광야에서도 꽃은 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