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마당 사과나무에 보기만 해도 탐스러운 열매가 주렁주렁 달리기 시작합니다. 하루는 크고 잘익은 사과들을 따다 바구니에 소복히 담아 식탁에 놓았습니다. 아이가 학교 갔다와 바구니의 사과를 먹습니다. 그런데 사과 먹다가 작은 구멍이 나있는 벌레먹은 부분을 발견하고는 더 이상 우리 집 사과를 먹지 않습니다.

하루는 손님이 테이블위에 놓인 사과를 먹으려 할 때 "벌레가 있을지 모르니 조심하세요" 말하자, 그 자매는 유기농으로 키운 벌레먹은 사과가 더 맛있는 거라며 벌레먹은 부분을 도려내고 먹어요. 벌레도 약을 많이 친 사과, 익지 않은 사과는 먹지 않는다고 합니다.

어릴 때 가끔씩 벌레먹은 썩은 사과가 있으면 썩은 부분은 칼로 도려내고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혹시나 사과를 먹다 썩은 사과를 발견하지 못하고 씹을 때 씁씁한 맛을 느끼곤 합니다. 우리 집 사과나무에 약을 치지 않아서인지 벌래 먹은 사과가 유달리 많습니다. 잘익고 상하지 않고 벌레먹지 않은 사과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벌레먹은 사과, 상한 사과, 썩어 들어가는 사과 이것 저것들을 다 골라내 버리면 남는 것이 없답니다. 아직 덜 익은 사과는 벌레도 먹지 않습니다. 좋은 사과는 벌레도 좋아합니다. 크고 잘 익은 사과는 이미 벌레가 조금씩 그 맛을 보고 검증(?)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벌레먹은 사과를 보고는 두번 다시 사과를 먹으려 하지 않습니다. 아니 집의 사과 나무에서 나오는 사과는 믿을 수 없어 두번 다시 먹지 않는 것을 보며 우리의 마음도 마치 사과와 같이 상처받고 다친 부분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때로 나의 아픔을 나누지 못하고, 내가 대신 그 분하고 아픈 가슴을 안고 살 수 밖에 없을 때가 있습니다. 나에게 아픔을 준 그 상처, 마치 벌레가 파먹은 것과 같이 씁씁한 그 맛과 같이 쓰린 부분이 있습니다. 그 사람을 보면 어떤 생각이듭니까? 직접 말로 표현하지 안을지라도 두번 다시는 보고싶지 않습니다.

우리는 심령이 깨끗하고 정직할수록 상처 받기쉽고 그 아픔도 오래 갑니다. 때로는 벌레먹은 사과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것 같이, 우리의 아픔도 사라진것 같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상처있는 사과를 보는 것 같이 나에게 아픔을 준 그 사람을 볼 때, 그 상처를 발견하곤 합니다. 우리는 아픔이 있을 때, 외면함으로서 벗어나려고 몸부림 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나의 심령 깊은 곳의 상처는 치료되지 않은 자신을 다시 발견하게됩니다.

마치 사과가 잘 익어갈 때 벌레가 먹듯,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고 더 가까이 가려 할 때 상처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벌레먹은 사과는 맛있는 사과입니다. 그 부분을 잘라낼 때, 사과만이 가질 수 있는 진한 향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잘라 낼때 아픔이 있을지라도 그것이 나의 인생의 향기를 내기위한 성숙의 과정일 수 있습니다. 주님은 나의 아픔을 아시고 나를 치료 할 수 있습니다. 주님에게 그 아픔을 고백하고 그 고통을 나눌 때, 그 아픔이 주님이 주시는 내 마음에 넘치는 평안으로 그리고 내 심령에 넘치는 기쁨으로 채워지는 아름다운 삶이 될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삶! 그것은 우리의 진정한 권리입니다.

광야에서도 꽃은 핍니다.